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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미술관은 학예실장을 싫어해
한겨레 | 2009-03-25 | 조회 3095
국공립 미술관은 학예실장을 싫어해
8곳 중 6곳 없어…5년째 공석도
“관장 ‘꼭두각시’ 찾는 탓” 지적도


  임종업 기자  


  
국공립 미술관은 학예실장을 싫어한다?
전국 국공립 미술관 여덟 곳 가운데 16일 현재 학예실장을 둔 곳은 광주, 대전 시립미술관뿐이며 나머지는 공석인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다. 또 한 군데는 아예 편제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지난해 말 최승훈 학예실장의 2년 임기가 끝난 뒤 덕수궁미술관 최은주 관장이 자리를 겸직하고 있다. 미술관 쪽은 “학예실장 공석은 관장 해임 뒤 후임 관장의 선임이 미뤄지면서 빚어진 것으로 조만간 공모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3년 이원일 부장 해임 뒤 5년째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시립미술관 쪽은 지난 6일 2년 임기의 학예부장 공모 공고를 냈다. 유희영 관장은 “해마다 공모를 했지만 적절한 인물이 없었다”며 “올해는 꼭 뽑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지난해 6월 박천남 학예실장의 1년 계약기간이 끝난 뒤 9개월째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지난해 두 번 공모를 했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해 3차 공모를 진행중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지난달 김종주 학예실장을 전격 해임해 한국큐레이터협회가 항의 성명서를 내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 미술관 안팎에서는 최효준 관장이 자신의 3차 연임 반대운동에 김 실장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괘씸죄’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돌고 있다. 이밖에 경기도미술관도 지난해 3월 학예실장직을 신설했지만 뚜렷한 채용 계획 없이 비워두고 있으며, 경남도립미술관은 운영과장 밑에 학예담당을 두고 있을 뿐 학예실장직은 편제에 없는 상태다.

미술계에서는 학예실장 경시 풍조가 관장과의 관계가 정립되지 않아 불거진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관장들 대부분이 작가 또는 이론가 출신으로 직접 전시 기획에 간여하고 있어 학예실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기 뜻과 맞지 않는 실장을 껄끄러워한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학예사도 “서울시립, 부산시립, 전북도립의 실장(부장) 해임에는 ‘말 안 들으면 잘라버린다’는 엄포가 내포돼 있다”며 “서울시립이나 부산시립에서 적임자를 못 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적임자는 관장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미술관의 김은영 학예팀장은 “관장이 미술관의 큰 비전을 설정한다면, 학예실장은 비전의 구체적인 실현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명령-복종’이 아닌 ‘존중-협력’ 관계가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