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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위장된 상업미술.
허탈한 예술인 | 2008-07-10 | 조회 2290
  빈정거림과 조롱의 미술사는 현대미술의 거대한 담론중의 하나이다. 예술사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숭고함이나 엄숙함으로부터 딴지를 걸며 하나의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현대미술은 자신의 뿌리를 흔들고 중심을 비아냥거리는 자기부정의 역사였다. 전통과의 무조건적이고 발작적인 결별은 스캔들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간주되어 왔다. 선배들을 고뇌하게 했던 문제들, 선조들의 정신을 짖누르고 헐떡거리게 했던, 바로 그것들을 가지고 현시대의 예술가들은 즐겨 장난질을 쳤다. 60년대의 워홀과 라우센버그는 30년 전의 뒤샹을 침묵케 했던 그 동기, 즉 욕설과 비난조차 문화 상품으로 포장해 버리는 그 상업주의 위세로 오히려 고무되었다. 모든 엄숙하고 진지한 질문들이 장난질과 익살, 아이러니와 빈정거림으로 대체되었다.
  
물론 이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장난질과 조롱은 거의 언제나 ‘허구를 들춰내는 솔직함’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스스로 빈정거리는 태도는 이후 예술의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빈정거림과 조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상의 전용을 겪는다는 데에 있다. 역사의 대들보를 조롱으로 갉아내고, 현재의 앞마당은 빈정거림의 빗자루로 말끔히 쓸어버리고, 위도아래도 없는 누각 위에서 단지 부유하는 자아를 읊조릴 뿐인 현재가 그토록 진보며 신나는 일일까? 더군다나 예술이 자기부정을 통하여 예술의 보존과 승리를 담보하는 것이라면, 과연 누구에 대한 누구의 승리인가?
  
예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걸까? 순수로 위장된 상업성 짙은 작품이 인기다. 일반 대중들에게 순수라는 사탕으로 현혹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상품으로 내다파는 상업성 짙은 작품들이 대중들에게는 예술이라 여기고 있다. 상업미술은 그들의 엉큼한 속을 순수로 위장하고 다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여기에 이율배반적 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 그 안에 종속하고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고도의 사기가 숨어져 있다. 예술은 사기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더욱 그들은 고개를 들어 한점 부끄럼 없이 예술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은 것도 예술이라고 부르자, 술 먹고 거리에서 노상 방뇨하며 길가에 드로잉하면서 퍼포먼스를 즐긴다고 하자. 모두가들 예술가로 모두가 용서가 되고 당위성을 발휘한다? 자 그럼 무엇이 남는가? 전 인류가 예술인이며 모든 것들이 작품인가? 그것이 현대미술인가 말이다. 그래서 미술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가? 그것이 정녕 예술이었던가?

  신은 신의 사망을 믿는 사람들의 정신에만 부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 낼 수 없는, 기묘하게도 상상력이 고갈되고 지적 불임과 정서적 무기력증에 빠진 시대에만 해당되는 리얼리티인 것이다. 예술은 목이 졸리고 있는데도, 말초적인 미적 반사운동을 노리는 시도들이 예술을 통째로 대변하고 있고 불가피한 것이라는 강변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잔존하는 미적 반사운동이 잘 팔리기에 급급한 예술가들에게는 결사적으로 매달려야할 전략이란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