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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정신차리시길~
비바람 | 2008-03-21 | 조회 2455
미술문화가 한개인에 의해서 움직여질 수는 없을 것이다란 생각은 정말 잘못 된 생각이다.
한 개인이란 어떤 위치와 사회적 지위를 갖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미술관장을 하느냐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미술관 관장이 갖고 있는 문화적 위치는 크기 때문이다. 또한 한개인이 장기적으로 위치를 점유한다면 어떠한 현상이 발생 할 지에 대해 무책임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 속에서 작동되는 자본을 분류함에 있어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상징적 자본 등 다양하게 분류하며 특히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 속에서 상징자본과 문화자본이 어떻게 작용되는지 설명한다, 개인의 예술적 취미와 생산들은 문화적 자본으로, 개인의 학력, 혈통, 사교 등은 사회적 자본으로, 그리고 개인들의 생활양식과 터전이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는 상징적 자본의 형태로 나타난다. 상징적 자본은 명예와 권위를 축적하는 전략이며 권위와 명성의 형식으로서의 상징자본은 사회 내에서 가장 귀중한 축적형식이다. 부르디외는 경제력이란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와 경제적 관계들의 장 즉 특수한 이익을 가진진 행위자들의 신체 발전과 분리될 수 없는 구성의 장 사이의 관계임을 강조한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상징적 자본과 상징적 폭력에 대한 모든 저항 운동들은 자명해 보이는 것, 그래서 문제시 되지 않는 것,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르디외의 예술사회학적 입장을 감안할 때, 미술계는 하나의 투쟁의 장이며, 다양한 아비투스를 가진 주체들의 각축장이다. 이 장에서 예술가와 예술가그룹들, 그리고 비평그룹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공인을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투쟁한다. 결국 다양한 미술계의 주체들이 분화되고 전문화되며, 상호 견제하고 경쟁함으로써 하나의 장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 때 특정한 세력이 제도를 통해 특정한 미학을 강요하거나 상징적 자본을 독점할 때 상징폭력이 발생한다. 특정 세력에 의해 상징폭력 강화될 때 문화 권력화가 초래되는 것이다.

지역문화에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미술관 관장이 자신이 맞는 코드의 인사들로 위원회를
두고 자신이 맞는 코드로 전시를 유치해 나간다면 그 지역의 미술관 관람객은 무의식적인 상황에 미술문화의 비판 없는 수용이 일어나게 된다. 또한 작품 구입에 있어서도 구입자가 선택한 미술품이 자신의 코드로 치우쳐 짐으로서 일어나는 것은 단순한 문제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과 불익을 넘어선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장이 오랬동안 자리에 있다면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며, 이는 선례로 남겨져 이후 관장 또한 재계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유지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아마 미술관장도 양심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자신이 굳이 다시 재계약 하는 이유가 무었인지를~
지금까지의 시간이 부족했다면 다른 모든 미술관장이 2년만 하고 퇴임하는 것은 자신이 더역량을 펼치기 힘들어서 그만 두는 것 인지를~

제발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아직도 인식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