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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87주년 기념공연 "향"
류무용단 | 2006-01-12 | 조회 5853
주최, 주관 : 류무용단
후원 : 국가보훈처, 전라북도교육청, 전북대학교, 서울종합예술학교, KBS전주, MBC전주, 전북일보, 전라일보, 전북도민일보, 우봉이매방춤전수관, 장금도춤보존회, 비청춤연수원, 사)한국예총 전북연합회 등

일시 : 2006년 2월 14일 화요일 저녁 7시
장소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오프닝

한량춤 - 류영수
한량춤는 민속 가면극 중에 노장(老丈)과 소무(小巫) 마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일반적인 궁중무와 달리 민속적 특색인 계급사회의 시대상을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주로 무동에 의해 구한말까지 전승되었고, 1910년 이후부터는 무동이 아닌 어른들의 춤으로 변하여 기방에서 성행하였다. 현재 한량춤는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하나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춤, 연기가 혼합된 무용극 형식의 춤과 독무로서의 추는 한량춤이다.

1부 예인(藝人)의 향(香)

도살풀이 - 이경호
도살풀이춤은 경기굿의 일부로 경기무속장단에 맞춰 무당들이 신을 청하기 위해 추었던 춤으로 김숙자의 조부 김석창에서 비롯되어 김숙자에 의해 예술적으로 다듬어졌다.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복을 빈다는 무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춤사위가 어렵고 기공을 필요로 하는 매우 예술적인 춤이다. 이들 춤사위 중에서 특이한 것은 판소리꾼이 소리하는 중간에 발림하는 듯한 목젖놀이가 있다는 것과 길다란 수건 놀이가 무수한 동작을 그리며 여백의 미를 자랑하고 제자리에 정지된 동작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과 슬픔을 넘어 환희의 세계로 비상하는 춤사위는 인간 본연의 이중 구조적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춤에는 무속적 갈망이 엿보이는 아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백자의 미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홍애수건춤 - 송미숙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4호 안성향당무
홍애(紅哀)수건춤의 유래는 버들애기의 나라를 위한 애끓는 붉은 마음의 춤이라는 설과 매장군과 매부인의 못다한 한 많은 사랑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는 야설이 전해진다. 다른 지역의 살풀이춤과는 달리 백단(白丹)수건을 들고 여인들의 일생을 다양한 수건춤사위를 통해 한 맺힌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고난을 극복한 후에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승화시킨다는 춤이다. 내면의 한을 풀려는 적극적인 자세와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정·중·동의 조화로운 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안성향당무의 대표적인 춤이다. 장단구성은 진살풀이, 민살풀이, 자즌살풀이장단으로 구성되어있고 복식은 옥색 치마, 저고리, 자락괘자, 봉두포, 백단수건을 든다.

신칼무 - 계현순
일명 ‘신칼대신무’ 라는 이 춤은 신칼이라는 긴 대나무 혹은 쇠칼 양쪽같에 종이 술을 길게 드리워 양손에 들고 춘다.
남사당패에서 줄타기 배움을 시작한 故 이동안 선생에 의해 이 춤이 전해지면서 문일지 - 김영희 - 계현순으로 이어진다.
장단구성은 중모리, 엇모리, 굿거리, 모리로 이어지나, 오늘 추어지는 신칼무는 계현순이 재구성하여, 박병천 선생의 용신풀이에 맞추어 부모은공에 대한 애절함과 인생의 늙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신칼로써 영혼을 달래는 의미로 굿거리와 엇모리 중심으로 추어진다.

승무 - 최창덕
승무의 아름다움은 정면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유연한 능선 및 긴 장삼을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뿌리치는 춤사위와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 등이 볼 만하다. 그리고 비스듬히 내딛는 보법(步法)이며 미끄러지는 듯 내딛다가 날 듯하는 세련미는 거추장스런 긴 장삼을 더 할 수 없이 가볍게 만들어준다.
또한 자진모리와 당악(堂樂)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의 연타는 주술적(呪術的) 힘을 발하여 관객을 몰아지경(沒我之境)으로 이끈다. 이 북소리가 멎으면 다시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고 연풍대(筵風臺)가 있은 후 어깨춤에 사뿐한 걸음이 곁들여지고 합장하면서 춤은 끝난다.

2부 애국소녀의 향

  1919년 3월1일 일본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민족독립운동,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
(배경) 일본은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강력한 무단정치를 펴는 한편, 민족고유문화의 말살, 경제적 침탈의 강화로 전체 조선민족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민족자본가 계급은 민족자본의 성장을 억제할
목적으로 실시된 회사령 會社令(1910)으로 큰 타격을 받았으며, 농민의 경우 토지조사사업
(1910∼18)으로 조상전래의 토지를 빼앗기고 빈농·소작농으로 전락, 극히 일부 지주층을
제외하고는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또한 농지를 빼앗기고 도시로 흘러들어 자유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과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민족차별등으로 극악한 환경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처럼 식민통치 10년동안  자본가·농민·노동자 등 모든 사회구성 계층이 식민통치의 피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입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사회의식이 급격히 높아져 갔고, 더욱이 미국대통령 윌슨이 전후처리를 위해 <14개조평화원칙>을 발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함에 따라 이 기회를 이용한 지식인·종교인들이 불길을 댕기자 항일민족운동은 삽시간에 거족적인 운동으로 번져나가게 된다.
류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극으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제(祭) 형식의 춤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