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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선생님의 대법원 판결을 위한 문화예술인, 교육인 연명
imgtr | 2005-01-06 | 조회 5738
김인규선생님의 대법원 판결을 위한 문화예술인, 교육인 연명


자신의 '벗은 몸'을 홈페이지에 올려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던 김인규 교사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진보적 문화예술인과 교육인들의 연명을 모아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동참을 원하시는 분은 성명, 직책(소속)을 아래 연락처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 02-773-7707
팩스 : 737-3837
메일 : talak1004@chol.com
담당 : 김종필, 이원재

이 메일을 받으시는 분들은 주변에도 계속 전파하여 최대한 많은 사람이 연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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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교사 사건에 대한 문화예술계‧교육계 의견서 초안

지금까지 김인규 교사의 부부나체 사진과 몇 장의 애니메이션 그림이 음란물로 강요받고, 청소년에게 심각하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당사자를 긴급체포하거나 교사직위를 정지시키고, 결과적으로 법정에 서게 된 현실은 우리 교육의 미래와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받아야 할 사회에서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그것은 김인규 교사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교육적, 문화적인 의미들을 읽어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것만을 놓고 청소년유해성을 재단하는 우리 사회가 과연 감성과 배려와 이해가 충분한 사회인지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김인규 교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성보호법)위반으로 검찰이 기소한 것은 작품의 문화적 맥락의 거세, 표상된 것에의 집착, 해석의 즉자성, 작가의 창작의지의 외면으로 인해 생긴 우리 교육사와 문화사의 한 비극입니다. 김인규 교사가 그 작품을 청소년성에대한 용기있고 책임있는 교육을 위해 창작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비정상적인 성인식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는 작품을 몇 번만 감상해도 쉽고도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의 애니메이션이 청소년에게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떤 점에서 유해한 것이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문화적 표현물은 다른 것과는 달라서 그 안에 숨어있고, 의도화되어 있는 창작의 의도와 맥락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때는 작품의 의미를 오히려 반대로 해석하거나 실제 현실의 사실로 명증하게 동일시해버리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교육적인 텍스트입니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를 보면 한 미술 교사의 고민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현실의 청소년은 기성 세대의 이해를 뛰어넘어 있습니다. 아마도 미술 교과서의 틀에 박힌 논리로 미술 교육이 되지 않는 현실을 김인규 교사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인규 교사에게 놓여진 선택은 ‘교육’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고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수많은 교사 중의 한 사람으로 남거나, 아니면 자신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주제로 텍스트를 만들어 교육하는 창의적인 교사가 되어야 하는 선택에 마주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예술인이자  청소년 문화 및 교육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 후자가 훌륭한 교육자가 선택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바로 그런 점에서 자신의 선택에 충실한 텍스트라고 확신합니다. 말하자면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임무와 사회적 위치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미술교사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곡해하지 않는 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아이들의 삶, 일상, 그리고 자신의 주변과 관계맺지 못하는 현행 교육에 대한 대안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미술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상을 포함하는 세계와 소통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점은 그가 이미지마다 써놓은 간단한 글들에서 아주 잘 확인됩니다. 간단하면서도 영감을 주는 그의 글을 일종의 ‘포르노그래피’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은 논의 수준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미술 작가이면서 교육자인 그는 자신이 일상 속에서 겪고 성찰해 온 주제들을 미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해왔습니다. 만일 교육자가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의지 자체가 범법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교육 행위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이 텍스트 자체의 범법 여부에 대한 논란 자체가 우리 현실의 암담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며, 교육의 존재 근거를 근원적으로 부인하고 말살하는 명백한 상징적 폭력입니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사회적으로 비교육적인 텍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은 맥락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실제로는 매우 비교육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음란하다면, 그것은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왜곡된 기존 관념입니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기’에 대한 노출 문제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 부분의 주제 의식은 ‘몸’에 대한 시선의 문제입니다. 김인규 교사가 이 부분에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몸’에 대한 기존 관념들이고 이에 대한 미학적 비판 행위의 필요성입니다. 김인규 교사를 고발하고 있는 논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몸’을 섹스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통념입니다. 김인규 교사는 이 부분에서 명백하게 이러한 시선의 형성이 역사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관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작 음란한 것은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이를 고발하고 탄핵하는 기존의 관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가 교육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몸’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몸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임신한 아내의 사진은 소비사회가 강제하는 미적 기준에 대해 반성할 것을 명백하게 합니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미학적 차원을 떠나서도 ‘성’과 ‘육체’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가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청소년의 성적 관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입니다. 사실 몸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기존의 사회적 관념은 몸을 성적 맥락에서 이해하면서 사회적 실천을 수행해가는 기존의 성의식과 성관념의 가정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 가정은 ‘나체’란 성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공유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인규 교사의 작품은 이런 식의 사회적 관념에 대한 비판이면서 몸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소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미술 교육의 텍스트인 동시에 성교육의 텍스트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대체 어떤 점에서 청소년성보호를 위한 법률 취지에 위배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성기에 대한 묘사 부분이 문제라면 우리 사회에서는 성교육을 할 때 별을 그려놓고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연할 따름입니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청소년 ‘보호’ 논리와도 전혀 충돌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보호법 등의 법률 취지에 보면 모든 정보를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여부를 선별하여 여과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필요성에 기대어 행해지는 문화에 대한 형사정책적 접근은 흔히 ‘건전한’ 청소년 문화 육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제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법률 취지는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음란성’, ‘유해성’ 등의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법 취지와 관계가 있는 청소년 보호라는 논리는 여러 측면에서 진지한 검토를 요합니다. 먼저 청소년 보호 논리의 현실적 타당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대 문화가 몇 가지 사회적 소동을 일으켰던 사건 수준으로 과잉 일반화되는 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채택해야 할 입장으로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특징 지워지는 정보화와 전지구화의 과정은 10대 문화를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경계 내에 더 이상 존재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관련 연구에 따르면, 10대문화의 성장은 근대화/탈근대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 3세계의 특수성과 전통의 존재가 10대 문화의 성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10대 문화의 자립화 경향성을 제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청소년을 가두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들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어나가고 생산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청소년계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설사 청소년 보호 논리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의 경우는 국가적, 법적 개입의 적정선을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명분과 문화 통제 사이에 발생하는 쟁점은 국가적, 법적 개입의 한계,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는 법철학의 문제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국가적 질서 유지 기능의 적정성 문제이며, 그 방식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우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쟁점을 넘어 입법 취지를 인정한다고 해도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음란물을 상업적 목적으로 생산하여 유통하는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처벌을 의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 대한 사법적 논란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설사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의 사진이 특정인에게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하거나, 이에 대한 개인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문제인가는 입법 취지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김인규 교사의 문제는 교육 방식의 문제를 법률적으로 단죄하는 초법적인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특정한 교육방식에 대해, 혹은 개인의 표현 양식에 대해 찬반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어떤 방식을 취한다고 해서 그 입장에 대해 법적 적용이 검토되는 것은 전체주의적 법 관념이 아니고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논란 자체가 10대의 가능성을 사전적으로 봉쇄하는 문화적 검열과 통제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나타나는 ‘획일주의’ 앞에서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의 사회적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의무가 가능할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예술, 교육 그리고 청소년 정책의 맥락에서 김인규 교사의 사건에 접근해왔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의 법률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좀 더 의미를 확대하면 미래에 대한 사회적 설계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10대 문화의 일부에서 나타나는 ‘우려할 만한 징후’에서 형사정책적 접근을 택하느냐, 아니면 10대 문화에서 사회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나갈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 교육적 측면에서 살핀 바와 같이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음란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김인규 교사에 대한 사법적 논란 자체가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예술가에 대한 부당한 창작권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규 교사의 작업들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정말 중요한 텍스트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이 중지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