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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만 원의 샤갈, 피카소
무인도나무 | 2013-02-12 | 조회 1877

 

 

이곳을 전북도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체크하길 바라며...

 

 

광주에 사는 사람입니다. 개인 주머니 사정상 생계비의 엥겔지수가 평균보다 높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에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인상주의부터 팝아트까지 아우르는 전시를 하고 있다는 광고를 티브이로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관람료가 만 원으로 아주 저렴했고 엥겔지수를 낮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원에 샤갈과 피카소 워홀까지라니 좀 의아하긴 했지만 전북도립미술관이 티브이에 광고를 하고 있으니 51%는 믿음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 터미널까지 1시간 30분여를 가서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970번 시내버스를 타고 산기슭에 있는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오후였습니다. 와우! 사람들이 바글대는 미술관이라니 놀랐습니다. 설연휴에 이 외진 산기슭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어떤 젊은이들은 KTX를 타고 왔다고도 했지요)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아마도 나처럼 평소 문화생활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예상보다 작은 전시실에 피카소, 세잔, 로트랙, 미로, 몬드리안, 샤갈이 오글보글 모여 있었습니다. 전시는 예고편이 다인 영화처럼 피카소와 샤갈 워홀이 전시실의 수문장처럼 걸려 있었고 전시실을 돌고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 띵하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무슨 개그 한 편을 본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대중을 상대로 벌거벗고 사기를 치고 있는 현장이 아닌가하는 분노가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성으로 그 분노를 수습했지요.(아, 만 원이구나 하면서...)

그러나 이런 전시를 그런 제목을 걸고 한다는 건 큐레이터의 전문성은 물론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입니다. 한 사회의 예술 수준이 그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의 총체적인 맞물림과 비례하는 것이고 보면 이번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예술수준과 딱 부합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선 사기가 아닐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렇게 엉터리로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예술판은(문화계 전반) 소위 자칭 지식인 혹은 자칭 예술가연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중을 상대로 왜곡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면서 그들이 한 치의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대중의 대부분은 현대미술을 난해하다고 받아들이고 그런 대중을 편하고 쉽게 유혹하는 방법은 한 세기 전에 이미 흘러간 물이 된 평면미술이겠지만 그렇게 안이하게 대처하는 한 우리나라의 미술계는 절대 발전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북도립미술관 전시의 장점 하나를 굳이 들라면 현대미술에 무관심한 대중을 근대미술을 미끼로 현대미술로 유혹하는 삐끼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문제는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 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과 현상을 왜곡하느냐 진실하게 드러내느냐 지요. 삐끼의 정체성이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진실한 이번 전시의 내용은 바로 샤갈과 피카소를 팔아 베네수엘라의 현대 미술 화가들을 사게 된 것이었다는 결론인데 그렇다면 그 자리에 국내 현대작가의 작품이 빠진 것이 화룡점정에서 점 하나가 빠진 꼴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점이 우리 엉터리 사기판인 문화예술계의 가장 중요한 점이기도 하구요. 큐레이터들의 자질과 능력이 드러나는 점이구요. 이번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행태에서 보듯이 별 기대를 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자존심을 걸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 것입니다. 모쪼록 이 엉터리 사기판의 미술계에서 테크닉이 아닌 이론을 갖춘 진정한 작품으로 말하는 예술가를 발굴하는 진정성과 열의를 가져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