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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정창모의..전주에서의..어린시절과..이력서..
오태규 | 2013-08-12 | 조회 2092

정창모화백의...전주에서의..어린시절..가계와 역사..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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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현장 문화계 인물 정창모씨

김은정 |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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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8.17 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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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역 조선화 거장 정창모씨는 효산의 외손자

호남한국화맥 잇는 효산의 예술성 이어받았다.

반세기의 세월을 훌쩍 넘어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 문화계의 주목을 끈 북쪽인사들은 단연 예술인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서울에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개인전이 기획되어 남북예술교류의 새로운 진전과 분단 미술사 복원의 단초를 여는 중요한 계기를 전하리라고 기대했던 정창모씨에게 모아진 관심과 기대는 유난히 컸다.

비록 전시작품 대부분이 작가의 작품이 아닌 모작으로 밝혀지면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전시회 자체가 무기한 연기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월북화가 효원 정창모씨(69)는 이제 남과 북을 잇는 미술사의 전령사가 되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북중을 5학년까지 다니다 북으로 간 정창모씨는 북한현역작가중에서 조선화의 최고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던 그의 첫스승은 외할아버지. 호남한국화의 맥을 잇는 효산 이광렬선생(1885-1966)이 그의 외조부였다는 사실은 전북화단에 새로운 화제가 되었다.

효산은 선전에서 여러차례 입선했고 의제 허백련, 남농 허건, 이용우 김은호를 비롯, 당대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였던 서화가. 문인화에 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매화로 예술성을 단연 돋보였으며 그의 유작은 순천 송광사를 비롯, 전주 향교 누각과 사우 편액 금석 등으로 남아있다. 효산은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큰 딸이자 외딸의 아들이었던 외손자에게 각별한 사랑을 보였으며 어린시절부터 붓과 종이를 주어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신선도와 잉어를 소재로 한 문인화로 지역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아버지 효산의 뒤를 이었던 인당 이영균씨가 그의 외삼촌이지만 얼마전 작고했다.

정창모씨는 월북해 인문군을 제대한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회가 운영하는 야간미술연구소에서 소묘를 배웠는데 역시 월북화가로 개성시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임군홍은 그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도했다고 한다.

그가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한 것은 스물여섯살때였다. 조선화 학부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스승은 정종여 이률선씨. 특히 정종여는 그의 작가적 위치를 열어준 스승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단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대학 졸업작품인 ‘배머리에 오신 어버이 수령님’. 새벽 현지지도에 나선 김일성 주석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바다 안개가 자욱한 이른새벽 포구의 풍경과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조로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평양교원대학교원을 거쳐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되어 활동했는데 특히 60년대 중반부터는 풍경화로 빼어난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때부터 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활동을 해왔다. 색조가 부드럽고 여운이 있는 정서적 깊이가 독특한 작화가 그의 작품 특징. 몰골화부문에서는 가장 우수한 필력을 보여주었으며 우수한 풍경화들은 현대조선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근작들은 진한 먹과 연한 먹을 대비시킴으로써 얻어내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 습필과 갈필의 적절한 조화로 얻어내는 수묵의 멋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만수대 창작사를 통해 많은 조선화가들을 키워낸 그는 현재는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들 성혁씨도 평앵미술대학을 졸업, 조선화창작가로 활동하며 그의 뒤를 잇고 있다.

16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될 예정이었던 그의 개인전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민간업체인 만수기획이 주관해 준비했는데 개막 전날부터 관객들로부터 문의가 이어지는 등 미술계의 큰 관심이 모아졌다.

개막 전날인 15일 저녁, 모작임이 밝혀지기 전에 전시실에서 만난 만수기획 대표 신병문씨는 “7월 이산가족 상봉계획이 발표되면서 곧바로 전시회 기획에 들어가 대리인을 통해 그의 작품 50여점을 구입했다”며 “작품 판매금액의 25%는 통일성금으로 기탁되어 이산가족의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었다.

당초 전주를 시작으로 지방순회전시도 열 예정이었던 이 전시회는 서울에 와있던 정씨가 도록을 통해 여섯점을 제외하고는 전시작품 대부분이 모작임을 확인, 정씨와 가족들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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