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찾아가는 미술관 《시가 되고, 그림이 되어》
- 전시기간
- 2026-06-22 ~ 2026-07-03
- 기간세부설명
- 2026. 6. 22.(월) ~ 7. 3.(금) ※매주 토, 일 휴관
- 작품수
- 10 점
- 전시장소
- 전북특별자치도청 전시실
- 전시분야
- 주최 및 후원
- 전북도립미술관
- 담당자 및 문의처
- 063-290-6869
- 참여작가
- 하반영, 박부임, 지용출, 홍성모, 정미숙, 이용우, 주봉구, 송계일, 이용, 이운룡, 송수남, 송하경, 송희철, 이철량, 조수현(15명)
시가 되고, 그림이 되어
소동파로 잘 알려진 북송의 시인 소식(1037~1101)이 말했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 畫中有詩).” 시와 그림은 표현 방법만 다를 뿐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말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시의 내용은 저절로 이미지가 되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좋은 그림을 봤을 때 딱히 설명할 수 없고, 문법적이지도 않지만 어떤 텍스트 덩어리를 단숨에 읽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동아시아 예술 개념 중에는 ‘시서화(詩書畫) 삼절(三絶)’도 있다. 시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린다는 말이다. 시를 잘 짓는다는 것은 교양적 소양이 높아야 가능했기 때문에 배움이 가능한 집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사회의 불공평한 시대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우리가 잘 아는 시서화 삼절로는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있다. 지금으로 치면 시인이자 서예가이고 화가였다는 건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뛰어난 예술적 기질만으로도 세간의 질투를 받을 만한데 강세황은 한성부판윤(서울시장), 김정희는 예조참판(문체부 차관)이라는 높은 벼슬살이를 하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서양 철학에서도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는 여러 방향에서 다루어졌다. 그림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관람자의 지식이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말한 에른스트 곰브리치. 그림도 일종의 기호 체계로서 언어를 읽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다고 주장한 넬슨 굿맨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전시에서 글과 글씨, 그림을 동시에 감상하면서 시서화의 고고한 간섭을 즐겨보기로 한다. 전통 미술이 추구하던 미적 돋보임을 현대 작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있는지 엿보기로 한다.
이 전시에는 두 개의 산이 나온다. 진안 마이산과 정읍 내장산. 전북의 명산들이다. 말의 귀를 닮은 독특한 형태의 마이산을 보면 어떤 심상이 떠오르는가. 가을 내장산의 타는 듯한 단풍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장면을 보지만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시인은 글로서 느낌을 표현하고, 시각예술 작가들은 그림으로 그리거나, 판화로 찍기도 한다. 표현 매체에 따라 결과물의 질감도 달라진다.
화가는 이해인의 시 「사랑의 이름」을 읽고 화폭에 꽃나무와 새들을 그렸다. 꽃을 문 새가 세 마리의 새를 만난다. 이 새들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화가는 시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새로 표현했다. 흥미롭게도 옛 그림 속에서도 새는 종종 가족을 상징한다. 이용우의 <노안도(蘆雁圖)>는 갈대[로(蘆)]와 두 마리 기러기[안(雁)]를 그린 작품이다. 갈대의 ‘로’는 늙을 로(老), 기러기의 ‘안’은 편안할 안(安)으로 읽음으로 부부가 나이 들어서도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물을 보거나 같은 시를 읽었을 때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답습된 문화적 상징 탓도 있지만 텍스트적 상상력이 이미지화되는 과정 때문이기도 하다. 풍경은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시를 읽으면 풍경이 보이고 그림이 된다. 그림을 보면 시와 풍경이 떠오른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