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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청년 2026》
서울분관

《전북청년 2026》

전시기간
2026-08-13 ~ 2026-09-13
기간세부설명
작품수
21 점
전시장소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3길 74-9)
전시분야
주최 및 후원
전북도립미술관
담당자 및 문의처
(본관) 063-290-6878 / (서울분관) 02-720-4354
참여작가
김규리, 조민지

전북청년 2026

흐르는 것을 묶어두는 법


 

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그가 살아오며 남긴 것들, 시간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고 곁에 머무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떠나야 하는 자취방, 갱신이 불투명한 계약, 몇 해를 함께해도 다음 이동 앞에서는 쉽게 정리되는 인연들. 어느샌가 청년들에게 머무름이란 낯선 단어가 되었고, 한곳에 머무는 일도, 무언가를 꾸준히 쌓아가는 일도 무엇 하나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과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했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삶 자체를 지탱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지만, 지속되는 산물을 남기지 못하는 노동과 달리, 작업은 머무는 것’, 즉 세계 안에 내구성 있는 사물을 남겨 인간이 세계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달려도 남는 것이 없다는 감각, 쌓아왔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지워져 있다는 감각오늘날 많은 이들의 삶이 전자(노동)로만 수렴하고 있다면, 그 속에서 기어이 무언가를 만들어 세계에 새기려는 몸짓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는 흔히 오래 머문 장소, 끊기지 않은 관계, 차곡차곡 쌓인 시간 같은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의 토대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올해의 전북청년 작가 김규리와 조민지에게 그런 안정된 조건은 처음부터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두 작가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그 결핍과 마주한다.

 

유년기부터 잦은 이사로 정주할 고향을 가져본 적 없는 김규리에게 현실의 장소들은 언제든 떠나야 하는 임시 거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현실의 장소가 아닌,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을 향해 와 있던 꿈태몽에서 자신의 머무를 곳을 찾는다. 물리적 공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고 따라다닌 유일한 영토. 김규리에게는 어쩌면 낯선 풍경 쪽이 잠시 빌려 입은 옷이고, 꿈 쪽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꿈의 이미지와 해석들을 모으고, 그것을 오브제와 세트로 구현하여 형태 없는 것에 물성을 부여한다. 손에 잡히지 않던 꿈이 만질 수 있는 사물로 남겨지면서, 개인의 꿈은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되며 공동의 맥락으로 확장된다. 태몽은 본디 혼자 꾸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대신 꾸어 말로 전해주는, 한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언어의 형태로 도착해 있는 이야기다.

 

조민지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경쟁 속에서 애써 달려왔지만, 거기엔 넘을 수 없는 어떤 선이 있었고 그 제자리걸음 속에서 쌓아 올린 시간은 반복해서 지워졌다. 이 상실감은 안에서부터 비어 있던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자꾸만 밀려난 자리에서 생겨난다. 작가는 이를 흘러가 버리는 시간에 형태를 입히는 일로 마주한다. 한 올씩 실을 엮어 올리는 뜨개, 그리고 녹아내리기 전의 한때를 붙잡아 굳힌 파라핀, 그 느리고 반복적인 손의 시간은, 어쩌면 지워지는 것에 다시 물성을 부여해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인식되지 않은 채 흘러가던 것이 비로소 눈에 보이는 구조물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 한 올의 풀림, 단 한 줌의 온기만으로도 전체가 와해될 수 있는 그 취약한 물성은, 쌓아온 것이 언제든 다시 지워질 수 있다는 작가의 오랜 감각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조민지는 그 위태로움을 감추지 않고 관객 앞에 그대로 펼쳐 놓는다. 보이지 않던 자신의 시간을 내어 보임으로써, 마주한 이에게 물음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쌓여왔는가을 건네는 것이다.

 

이 두 작가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결핍과 마주한다. 김규리에게 그것은 처음부터 자신의 안쪽에 있던 것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고, 조민지에게는 자꾸만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에 맞서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결국 같은 동작에 도달한다.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필사적으로, 제 손으로 무언가를 엮어 그 자리에 다시 놓아두는 것. 꿈은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다른 것이 되고, 뜨개의 그림자는 보는 순간마다 다시 흩어진다. 묶어두는 법이란 그러니 어떤 완성이 아니라, 풀림과 지워짐을 알면서도 기어이 다시 엮어내는, 완결될 수 없는 반복에 가깝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사물이 낯선 이들 앞에 당도할 때, 아렌트가 작업 너머에 두었던 행위사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주고받으며 일어나는 일의 자리가 비로소 열린다.

 

두 작가가 붙잡으려 했던 것들 사이를 지나며, 관객들이 문득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들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흩어지든.

(이지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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