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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없다》
대아스페이스

《사건은 없다》

전시기간
2026-09-22 ~ 2026-12-13
기간세부설명
작품수
3 점
전시장소
JMA 대아스페이스(대아수목원)
전시분야
영상, 사진
주최 및 후원
전북도립미술관
담당자 및 문의처
063-290-6878
참여작가
박세연, 육근병, 한정식

《사건은 없다 Nothing Happens》


우리가 이미지(image)라 부르는 것은 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워낸 재현이다. 카메라 렌즈에 무언가를 담을 때, 그 프레임 안에 다 들어오지 못하는 풍경과, 그 앞뒤에 존재했던 시간들은 버려지고, 잘려 나간 것들은 잘려 나갔다는 사실조차 남지 않는다. 우리는 남은 화면만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해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재구성되지 않을 때 그 이미지를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무엇을 찍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사진은 실패한 사진으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영상은 지루한 영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시작과 끝맺음이 있고,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으며, 원인과 결과로 정리되는 것. 우리가 사건(event)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 그런 것들이다. 벽지가 조금씩 바래는 일, 땅이 마르는 일, 고인 물이 증발하는 일들…, 그렇게 매일 진행되고 있으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되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부를 이름조차 없다. 


여기 놓인 전북도립미술관의 소장품 세 점은 그렇게 남겨진 화면에서 다시 무언가를 덜어낸다. 한 사람은 이미 없어진 것의 자리를 찍었고, 한 사람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화면을 얻었으며, 한 사람은 촬영 현장의 소리를 지웠다. 덜어냄이 거듭될수록 화면에 남는 것은 줄어들지만, 그 줄어듦은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 자리를 넘겨받는 것은 대개 작고 느린 변화들, 무언가 앞에 놓여 있었다면 끝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들이다.


박세연

박세연(1984-)의 사진 〈Untitled 6, AS EVER series〉(2011)에 찍힌 벽의 한가운데에는 사각형의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무엇이 걸려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바랜 벽지가 무언가 거기에 존재했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작가가 한 일은 그저 카메라를 들어 찍는 것뿐이었다. 벽에 있던 사물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점에 떨어져 나갔고, 그러자 그 자리에는 사물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점유했던 시간의 윤곽만이 남았다. 변색된 벽의 흔적은 무엇이 있었는가를 말해주지 않는 대신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를 남기며, 벽은 자신이 기록자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기록해 왔다. 


벽이 바래는 일은 어느 순간에도 사건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진행되었을 뿐이고, 진행되는 동안 목격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물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던 순간만이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으나, 그것은 화면 밖에서 이미 지나가 버렸다.


한정식

한정식(1937-2022)의 대표적 추상 사진 연작 〈고요〉(2005) 중 하나인 이 작업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곡선의 자국들이 마른 땅을 가로지르고 있다. 무엇이 그 자국을 냈는지 알 수 없지만,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사진에 있어서 실패가 아니다.  사진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찍은 것이라는, 사진 매체의 조건—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그것이 존재했음(ça-a-été)이라 부른—을 겨냥한 한정식의 작업은 대상의 존재성을 사진 위에서 지움으로써 사진이라는 매체 그 자체를 관객에게 내민다. 


그러나 대상을 지운 자리에 남는 것은 지시대상이 사라진 순수한 형식이 아니다.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게 된 화면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가 거기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수록, 무언가 거기 분명히 실재했었음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지시대상을 지우는 일은 지시하는 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시할 대상 없이 지시만을 남기는 일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만 남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으므로, 이 화면에서 사건은 제시되지 않는다. 


육근병

육근병(1957-)의 영상 작업 〈Nothing〉(2013)이 상영되는 8분여간,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비가 잔잔하게 내리는 마루뿐이다. 소리는 모두 제거되었고, 비로 젖은 표면과 조금씩 떨어지는 물, 조금씩 옮겨가는 빛만이 상영 시간을 채운다.


〈Nothing〉에는 사이가 없다. 쇼트(shot)의 편집 없이 한 장면만으로 구성된 이 영상에는 몽타주(montage)가 없고, 그러므로 사건이 발생할 자리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화면 앞에서 늘 다음을 기다린다. 사건이란 그 기다림이 하나씩 채워지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연쇄가 끊어지면 관객은 다음을 예상할 수 없게 되고, 그저 볼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질 따름이고, 어떤 사건으로도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화면 하단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가 흐르는데, 이 장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에도 시간이 자기 몫을 세고 있음을 알릴 뿐이다.


사건은 없다

세 화면 어디에도 사건은 없다. 박세연의 벽에서 무언가가 떼어지던 순간도, 한정식의 땅에 자국이 나던 순간도 화면 밖에서 일어났기에 우리는 그것을 관측할 수 없으며, 육근병의 비는 적막 속에서 그저 계속 내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이 없다는 것과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같지 않다. 다만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세 작가는 그렇게 밀려난 일들을 장면으로 담는다. 


사건은 없다. 그러나 사라진 것도 없다.

(이지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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